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천 상륙작전 (문단 편집) === 북한의 인식 === [[북한]]에서는 인천 상륙작전은 사실인즉 9월 13일에 시작되었고 사흘 동안 [[월미도]]에서 해군 병력으로 구성된 수비대가 안전한 철수를 위해 처절하게 싸워서 미일 연합함대의 군함 '''144척을 침몰시키고 수십만 미군을 섬멸하는 대승'''을 거두고 옥쇄했으며 맥아더가 패배를 덮고자 9월 15일로 날짜를 조작했다고 한다. 실상 월미도의 해군 육전대는 개전 당일 미 해병대에 의해 단 두 시간 만에 반도 넘는 190명이 전사하고 나머지는 포로가 되어 전멸했다. 전투 내용도 변변치 않아서 진지에 숨어 저항하다 불도저를 동원해 진지를 파묻어 버리는 바람에 생매장당한 인원도 상당수 있을 정도였으니 월미도 수비대가 거둔 전과란게 '''[[팀킬|아군 사살 1명]]'''. 게다가 북한쪽 기록에는 [[일본 제국 해군]]도 참전했다고 되어 있지만 이건 사실무근이다. 구 일본 제국 해군의 경우에는 옛날에 해군에 소속된 인원들이 [[소해정]]들이 원산 등지의 기뢰 제거에 투입되어 1척이 기뢰에 접촉해 가라앉고 승조원 1명이 사망하는 피해를 입은 게 전부이다. 원산소해작전에 구 일본 해군이 투입되는 것에 말이 많았지만 원산은 기뢰밭이였고 이 당시 미 해군의 소해정은 거의 없는 수준이었으며, 그러면 미 본토나 유럽에서 소해정들이 증원을 와야하는데 함정의 크기상 장거리 항해, 빠른 항해가 불가능했기에 강행되었다. 덤으로 구 일본 제국 해군 인원들은 인천에서는 작전하진 않았다는 것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답이 없다. 여기서 해군 전투라면서 해군 군함이 안 나오고 [[해안포]] 부대가 주역으로 나오는 것은 북한 해군의 함선 전력이 미미했기 때문이다. 원래 6.25 개전 당시 북한 해군은 어뢰정 4척 등 고속정과 상륙정 몇 척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개전 초 어뢰정 두 척을 UN 해군에게 상실한 뒤로 수상전을 사실상 접고, 위장어선을 이용한 기뢰 부설 정도의 임무만 종전 시까지 수행했다. 그러니 해안포 부대가 작품의 주역이 된 것. 개전 극초반에 북한 해군이 활동이란 것을 하고 있을 때는 어뢰정이 미 해군 [[순양함]] USS 볼티모어 함을 격침시켰다는 구라는 치고 있다. 그 순양함은 [[6.25 전쟁]] 당시 미국 본토에 있었다. 뭐, 일단 북한 어뢰정 몇 척이 [[주문진항 해전|주문진 앞바다에서 UN군 순양함을 공격한 일이 있기는 했지만]] 순양함들에게 아무런 피해도 못주고 일방적으로 털려나갔다. 일각에선 이들이 동해상에서 작전하던 [[소련 해군]] 태평양 함대의 순양함을 오인 공격하고 나서 거짓 보고를 한 것이라 여기기도 하나 확인된 바는 없다. 그런 이유로 [[북한]]에서는 월미도 승전을 대대적으로 기념하고 있다. 황건의 불타는 섬이라는 대하소설이 바로 이 월미도 승전을 다루고 있으며 영화 월미도[[https://blog.naver.com/minjune98/220422351601|예시]][* 북한 영화라도 체제 찬양이나 이적 행위 목적이 없는 단순 감상은 처벌 사유가 아니다.] 역시 이 사건을 다루고 있다. 북한 해군 해안포병들이 [[ZiS-3]] 야포와 [[자돌폭뢰]]로 미국 신형 구축함을 격침시키는 장면이 압권인 작품. 해당 신형 구축함은 [[기어링급 구축함]]으로 추정되는데, 구축함이 포탄과 연료가 모두 바닥나 멈춰있지 않은 이상은 76 mm 구경의 소구경 야포로는 못 잡는다. 몇 발을 맞춰도 구축함은 큰 피해가 없고 오히려 야포만 함포에 걸려 박살나는 일이 보통이며 야포탄 한 발만 맞아도 구축함이 폭발해 가라앉는다. 이것도 최초로 찍은 판이 [[개인숭배|'''수령에게 충성하는 모습이 안 나오고 전투 장면에만 치중했다'''는 이유로 전부 다시 찍었다고 한다.]] [[탈북자]]인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는 북한의 선전만 믿고 '월미도의 영웅'들에 대한 환상을 품고 월미도를 방문했다가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충격과 배신감을 느끼고 더욱 북쪽에 대한 환멸을 느꼈다고 한다. 대다수 북한 사람들은 "다른 건 몰라도 우리가 월미도에서 미제놈들에게 한방 먹이지 않았는가"하고 [[자위]]하고 있다. 그래서 자유북한방송을 통해 '환상 깨쇼'하고 방송을 내보내기도 했다. 인천 상륙작전을 북한이 언제 예측했는지에 대해서 북한의 공식기록은 [[김일성]]의 뛰어난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예지력]]으로 개전 3일차에 이미 인천상륙이 있을 것을 알고 대비했다고 한다.[* 물론 위에서 말한대로 북한이 사전에 인천에 상륙할 것이라는 것을 모른 것은 아니다. 단지 그게 3일 전이 아니며 북한 스스로 알아낸게 아니라 중국에서 [[저우언라이]]가 그럴거라고 알려준 것일 뿐이며, 김일성이 그마저도 씹었다.] 문제는 [[박헌영]] 일당이 미제 간첩인지라 고의로 작전기동을 방해해서 안타깝게 사전대비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다. 북한에서는 정권 초기 부수상을 역임했던 이정 박헌영이 미제간첩이라 하지만, 이 또한 북한측의 거짓 선동이다. 박헌영은 단 한번도 미국에 협력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박헌영은 1952년 미군의 세균전을 비난하는 연설을 할 정도니 그냥 정적에게 미제 간첩 누명까지 추가해서 김일성이 책임회피를 한 셈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